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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시사/칼럼 이야기

워치콘과 데프콘, 이게 뭘까?

위의 링크는 이번에 발표된 워치콘 2 격상 관련된 뉴스 동영상입니다. 글로 전부 설명하는것보다는 뉴스영상을 한번 보시는게 어째서 이포스팅을 쓰는지 알기 쉬울거라 생각되어 링크합니다. <동영상출처:네이버동영상,MBC>


얼마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시험, 게다가 최근 NLL을 무효화 하겠다며 협박에 가까운 조건들을 내걸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바로 어제까지 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국민장이 치뤄지느라 관심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국제사회 전체가 주목하고 있는 이시점에 우리 국민이 무관심하게 있을순 없을 것이다.

뉴스에서 연일 등장하고 있는 워치콘 격상! 데프콘 발령! 등등
이 말들이 대체 무슨 뜻인줄은 알아야 현재 상황을 파악할수 있을것 아닌가?

그래서 워치콘과 데프콘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아보기로 하겠다.

워치콘과 데프콘의 관계

혹여나 포털 검색을 하다가 이 사진을 발견하고는
"아 ~이사람이 데프콘 이구나..."
하고 넘어가실 분은 설마 없다고 본다.^^ (물론 예명이 데프콘이 맞긴하지만)

농담은 이쯤하도록하고, 제대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워치콘과 데프콘은 각각 5단계로 구성되어있으며 서로 상관관계가 매우 밀접하다.

워치콘은 '정보감시태세'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의 군사활동을 추적하는 정보감시태세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과의 분단상황과 휴전상황인것을 감안해 평시에도 '3단계'를 유지한다.데프콘은 적의 도발에 대한 '방어준비태세'로 역시 5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평시에도 4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워치콘과 데프콘의 발령단계

알아보기 쉽도록 표를통해 알아보도록 하자.(이미지출처:세계일보)

워치콘과 데프콘은 각각 5단계로 나뉘어진 발령 단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단계별로 행동강령이 정해져 있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우리나라의 경우는 평시에도 워치콘 '3단계' , 데프콘 '4단계'로 항시 유지되고 있다.

'워치콘 2'가 발령되는 시점은 국익에 현저한 위험이 초래될 징후가 보일때 발령되며, 첩보위성의 사진정찰, 정찰기 가동, 전자신호 정보수집 등 감시 및 정보분석활동이 강화된다. 지금까지 ‘워치콘 2’가 발령된 것은 이번을 포함해 5번째다.

'워치콘 1'은 적의 도발이 명백할 때 발령되지만 1953년 정전이후 아직까지 한번도 발령된적은 없다.

적의 정보를 분석해 발령된 워치콘에 의해 데프콘역시 발령된다.
'데프콘 3'가 발령되는 시점은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킬 조짐을 보일때이며, 전군의 휴가 및 외출이 금지되고 전시대기 상황으로 전환된다.

'데프콘 2'가 되면 실제탄약이 군 개인에게 지급되고 부대 편제인원이 100% 충원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프콘 1'이 발령되면 동원령이 선포되고 (예비군들도 닭장차에 실려서 군대 다시가야 하는..) 전시에 돌입하게 된다.

실제로 군에서 실시하는 대부분의 훈련은 '데프콘' 발령 상황에 따른 연습이라고 보면된다.

본인 역시 육군 포병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시도때도없이 훈련을 받아왔다. 미리 예고하지 않고 훈련이 진행되기 때문에 실전상황을 방불케 한다. 물론 실전과는 비교도 안되겠지만 말이다.

워치콘과 데프콘 실제 발령되었던 사건은?

위에 표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드렸지만 저런 글만 보고는 아직 실감이 안나실거라 본다.
그래서 실제 그동안 있었던 북한의 군사도발과 그에 따른 '워치콘', '데프콘'의 발령기록들을 되짚어 보기로 하겠다.

워치콘 2 발령기록

1. 1982년 2월 북한이 IL-28 폭격기를 전진배치했을 때

2. 1996년 4월 판문점에 무장병력을 투입했을때

3. 1999년 6월 제1연평해전 발발

4. 2006년 북한의 제1차 핵실험

5. 2009년 북한의 제2차 핵실험 및 '군사적 타격' 발언




데프콘 3 발령기록

1.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당시 한국은 '데프콘 3' ,UN에선 '데프콘 2'까지 격상한 기록이 있다.


판문점 도끼 사건은
남한에서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북조선에서는 8.18판문점 도끼 살인사건이라고 부르는 사건으로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인근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조선인민군 군인의 도끼에 맞아 즉사한 사건이다.

남한과 미국의 사건 설명
 
UN군측인 미군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제5관측소에서 제3초소와 비무장지대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군 3개 초소에 둘러싸인 제3초소 부근에 약 12m에 이르는 미루나무 가지가 무성하여 이를 제대로 관측할 수 없었다.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경 미군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11명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UN군측 제3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는 한국인 노무자 5명의 작업을 감독·경비하고 있었다.

이때 인민군 박철 대좌 및 장교 1명과 15명의 사병이 나타나 작업 중지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경비중대장 아서 보니파스(Arthur Bonifas) 미군대위가 작업을 계속 지시하자, 인근 초소에 있던 경비 병력을 요청하여 수십 명의 인민군 사병들이 트럭으로 도착하였다. 박철 대좌가 다시 작업의 중지를 요청하였으나, 보니파스 대위가 이를 무시하고 다시 등을 돌렸다. 이때 박철이 공격을 명령하였고, 몽둥이와 UN군측 노무자들이 나무 밑에 두었던 도끼 등을 휘두르며 기습공격하였다. 이들은 UN군측 지휘관과 장병들에게 집중공격을 가해 경비중대장 아서 보니파스 미군대위와 소대장 마크 바레트(Mark Barrett) 미군중위가 이마에 중상을 입고 피살되었으며, 이밖에 미군 사병 4명, 한국군 장교와 사병 4명 등이 중경상을 입었고, UN군측 트럭 3대가 파손되었다.

북한의 사건 설명

1976년 8월 18일 미군은 북측에 사전통보도 없이 미군 장교 2명을 포함한 10여명의 사병을 동원하여 미루나무를 찍기 시작하였다. 순찰중이던 조선인민군 병사(4명)들이 이를 보고 제지시키자 미군 장교 1명이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그들에게 집어던졌다. 이 때 조선인민군 병사 1명이 날아오는 도끼를 손으로 잡아 그대로 되받아 던지므로써 그 자리에서 미군 장교 1명이 즉사하였고 그 후 벌어진 격투과정에서 미군 장교 1명이 또 즉사하고 여려명이 부상을 입었다.

문제의 그 미루나무. 위의 흑백사진은 사건당시 모습이고, 현재는 전부 잘려나가고 흉물스럽게 아랫부분만 남겨놓았다.

아마도 완전 제거하지 않은것은 당시의 사건을 기억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당시 험한 사건과는 상반되게 사진에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도 보여, 상반된 느낌을 주는것 같다.



폴 번연 작전
 
 이 살인 사건으로 주한미군 사령관 리처드 스틸웰은 데프콘3(예비경계태세)를 발동하였고, 문제의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전인 미국전설에 등장하는 거구의 나무꾼 폴 번연에서 따온 폴 번연 작전(Operation Paul Bunyan)을 수행하였다.

 폴 번연 작전시 UN군은 데프콘 2(공격준비태세)를 발령하였다. 미국 본토에서 핵탑재가 가능한 F111전투기 20대가 이동하여 왔고, 괌에서는 B-52 폭격기 3대, 오키나와 미공군기지에서 이륙한 F4 24대가 한반도 상공을 선회하였다. 또한 함재기 65대를 탑재한 미 7함대 소속 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순양함 등의 중무장한 호위함 5척을 거느리고 동해를 북상하여 북한 해역으로 이동하였다.

 미국은 교전상황에 대비한 구체적인 전쟁계획인 일명 '우발계획'까지 수립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폴 번연 작전시 교전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군 포병과 미군포병이 북한영토인 개성의 인민군 막사를 포격하고 개성 위쪽의 시변까지 포격하여 인민군 포병부대를 궤멸시킨다는 것이었다. 또한 전쟁이 확대될 경우 개성과 연백평야에 대한 탈환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인민군의 전차부대가 남진할 경우 이에 대한 전술핵의 사용도 고려되었다.

 한국군은 폴 번연 작전과 함께 북한의 도발 유도계획을 세우고, M16소총, 수류탄, 크레모아 등으로 무장한 카투사로 위장시킨특전사 요원을 공동경비구역 내에서의 폴 번연 작전에 투입하여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였으나, 북한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폴 번연 작전 종결후 북한은 긴급 수석대표회의를 요청, 김일성의 '유감성명'을 전달했다. 처음에 미국은 북한의 유감성명이 잘못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며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다가 24시간만에 태도를 바꿔 이를 수락하였다. 북한은 1년 반 동안이나 준전시상태를 풀지 않았고, 남한도 북한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등 사건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후 사건 당사자인 미국이 빠진 상태에서 남한과 북한의 군사력 증강대결이 벌어졌다. 또한 판문점 내의 공동경비구역에서도 경계가 설정되었으며, 경계 밖 상대편 지역에 존재하던 초소는 철거되었으며, 콘크리트 단으로 경계를 표시하였다

대표적인 도끼난동 사건외에 다른 국지적인 무장공비 침투나 간첩포획작전등이 수차례 있었지만 그것은 '데프콘' 이 아닌 '진돗개'발령이라고 한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 중에도 아직까지 '데프콘' 과 '진돗개'를 구분하지 못하는분이 많아 설명하다가 난감해질때가 종종있다.

추가적으로 설명을 달자면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의 경우 '진돗개'가 발령된다.

총 3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반적인 국지작전 (탈영병 포획도 포함)에 '진돗개 2'가 발령되고, 국익에 위험을 가할정도의 국지작전의 경우 '진돗개1'이 발령된다. 평시에는 3단계를 유지한다.

그 시대를 살아온 분이라면 누구라도 기억하고 계실 사건이다.
강릉의 해안초소를 뚫고 들어온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 사건 당시에도 강릉전역에 '진돗개 1'이 발령되었다.

당시의 상황을 몸소 체감하시길 바라며 사진자료를 인용한다.


위 왼쪽부터 좌초된 북한 잠수정 인양작업, 특전사를 투입한 무장공비 섬멸작전, 13일째 작전중인 육군 병력, 무장공비에게서 습득한 전리품의 순으로 정리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사이즈로 볼수있음.출처:강릉무장공비사건 공식공개 사진)

당시의 대규모 침투사건으로 국민들은 경악했고, 공비는 다 잡았다고 하지만 아군의 사상자수도 너무 많았다.
그중 아군오인 사격에의한 사상자도 많았기에 제대로된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다.

이 외에도 수많은 간첩사살/포획 작전등에서 '진돗개 2'가 발령되는 경우는 많으니 그 부분은 생략하겠다.


대표적인 사건들을 주로 다루다보니 누락된 사건이 있을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혹시 관련 사건내용을 아시는 분은 댓글을 통해 의견 주시길 바랍니다.



아래링크는 북한핵실험 관련글입니다.



PS.굳이 새벽부터 사진자료를 찾아가 여러분에게 워치콘에 대해서 알려드리려는것은, 국민불안을 부추기기 위해서가 절대 아닙니다. 어제까지는 고인을 보내드리느라 신경쓸 겨를이 없었지만 현재 대한민국이 봉착한 문제를 똑바로 인식하고 적어도 뉴스에서 어떠한 상황이다라고 보도했을때 그 위험성을 인지하실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포스팅을 쓰게 되었습니다.

현재 '워치콘 2' 로 격상했다는 뉴스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것인지 정도만 알아 두세요.
다행인건, 예전처럼 불안감에 라면과 식료품등의 사재기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것이 국민들의 의식이 많이 성장한것 같아 기쁘네요. 너무 불안감을 가지고 대응할필요는 없겠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무엇이 우선적으로 중요한지 잘 생각해 봐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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