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연예 이야기

황성옛터 부른 80년전 국민가수 '이애리수'씨가 98세의 나이로 생존!!

무려 80년전의 가수 생존확인. 현생존하는 최고령의 가수라고 생각되는데요


최초의 국민가수 이애리수가 생존해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8년 '황성옛터'(예전 이름 '황성의 적')을 불러 전 국민의 가슴을 적신 이애리수는 1930년대 결혼과 함께 연예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온 상태였다.

올해 98세인 이애리수는 경기도 일산 백송마을의 한 요양시설에서 간병인과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다.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건강상태는 아직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개성 출신인 이애리수의 본명은 이음전. '애리수'라는 예명은 '앨리스'에서 따온 것이다. 이애리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10세 무렵부터 배우로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배우로 활약하면서 막간 가수로도 활동하던 이애리수는 소박한 창법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8세때 나라 잃은 슬픔을 표현한 '황성옛터'로 국민가수로 등극한다.

왕평이 작사하고 전수린이 작곡한 '황성옛터'는 고려 옛 궁궐인 개성 만월대의 쇠락한 모습을 노래해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랠 길 없던 국민들의 마음을 적셨다. 특히 '황성옛터'는 최초로 한국인이 작사·작곡한 대중가요로 평가받기도 한다.

1931년 '메리의 노래', '라인강' 등의 노래를 담은 음반으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한 이애리수는 다음해 '황성의 적'이라는 이름의 음반을 발표했고, 이 음반은 5만장이라는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했다. 당시 5만장은 현재 기준으로 500만장에 육박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노래를 통해 나라를 잃은 슬픔을 상기할까 걱정된 일본 경찰이 이 음반을 발매금지 시켰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애리수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이애리수는 같은 해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 학생이던 배동필씨를 만나 결혼을 약속했지만, 배동필씨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딴따라' 취급 받던 가수와 엘리트였던 대학생의 현격한 신분 차이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결국 이승에서 못 이룬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자며 독약을 먹고 동반자살을 기도한다. 우여곡절 끝에 구출된 이애리수는 자신의 처연한 심정을 담은 노래 '버리지 말아 주세요'를 부르고, 그의 애처로운 노래를 들은 배씨의 부모는 결국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한다. 가수 출신임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것이 결혼 승낙의 조건이었다.

이애리수는 결혼 이후 2남 7녀를 낳아 기르면서 철저히 자신을 숨긴 채 살아왔다. 맏아들조차 어머니가 '황성옛터'를 부른 가수라는 사실을 대학생이 된 이후에야 알았을 정도였다. 무심코 노래를 읊조리는 일도 없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비록 이애리수는 70년 넘게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채 평범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가 부른 '황성옛터'는 이후 수 많은 후배 가수들의 입에 올라 아직까지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악으로 꼽히고 있다.


모던보이를 본후 관심을 가지게된 옛음악.
그중에서도 모던보이의 시대적 배경과 딱 맞아 떨어지는 유명한 국민가수였던 "이애리수"여사가 98세의 나이로 생존해 있다니,얼굴도 잘 모르는 본인이지만 자연스레 관심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애리수 여사의 노래를 찾아 봤어요.

노래는 다음 포스팅에~!

http://karaeff.tistory.com/358 

위링크로 가면 노래가 있는 페이지로 G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