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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의취미(Taste)/카라의 일기장

오늘은 한글날 ~! 모두모두 경축해주세요^^ (한글날의 유래와 발자취)

오늘은 한글날 입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적합한 글이라고 칭송하면서 연구가 계속 되어지고 있는 우리민족의 한글~
세종대왕께서 여러가지 업적을 이루셨지만 그중 으뜸이 바로 '한글' 아닌가 싶네요.

이런 중요한날을 국경일로 정해야지..
왜 폐지를 해서는...쩝~ 너무 아쉽네요.
쉬는날이 줄어들수록 점점더 암울해지는 직장인~

다들 우리나라 고유의 글을 만들어준 세종대왕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한글을 바르게 써 봅시다~
요 아래에 한글날의 발자취를 되 짚어보겠습니다.


   "한글날"은 훈민정음의 반포를 기념하는 날, 우리 글자 한글을 기리기 위하여 법으로 정한 날이다. 한글날을 제정한 때는,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있던 1926년이다. 조선어 연구회(지금의 한글 학회)가 1926년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 처음으로 '가갸날'이라 이름해서 기념하기 시작했다. 한글날을 10월 9일로 정한 것은 한글이 반포된 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글은 조선 세종 28년 '음력 9월 상한'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표되었다. 기록에 따라 9월 상순의 끝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서기 1446년 10월 9일'을 기리게 되었다.

  • 1926년 음력 9월 29일(11월 4일) '가갸날' 선포(한글 반포 8회갑=480돌).
  • 1928년 '가갸날'을 '한글날'로 이름을 고침.
  • 1931년 음력으로 기념해 오던 '한글날'을 양력 10월 29일로 정하여 기념함.
  • 1934년 음·양력의 환산 방법을 그레고리오력으로 고쳐 10월 28일로 정하여 기념함.
  • 1940년 "훈민정음" 원본의 발견으로 정통 11년 9월 상한이란 한글 반포의 날이 대강 밝혀졌으나 나라 안팎의 사정으로 기념식을 갖지 못함.
  • 1945년 훈민정음 원본에 따라 1446년 10월 9일이 한글 반포의 날임을 확정함.
  • 1946년 한글 반포 500돌을 맞이하여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함.
  • 1981년 '한글날' 기념식이 정부(서울시) 주관으로 바뀜(535돌).
  • 1982년 '한글날' 기념식을 서울시에서 문화공보부 주관으로 함.
  • 1990년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함.

'가갸날' 선포: 조선어 연구회(지금의 한글 학회)는, 일제의 억압에 짓눌려 위축되어 있던 겨레얼을 되살리고 북돋우기 위하여, 한글(훈민정음) 반포의 날을 기념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왕조 실록》권113 세종 28년(병인) 9월 조의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是月訓民正音成)."란 기록을 근거로 삼아 서기 1926년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 곧 한글을 편 지 8회갑(480년)을 맞이하여, 한글 반포 8회갑의 잔치를 베풀고, 이 날을 '가갸날'로 선포하였다.
'한글날'로 이름을 바꿈: 1928년에는 '가갸날'의 이름을 '한글날'로 고치고, 계속 음력 9월 29일에 기념식을 올렸다.
'한글날'을 양력으로 고쳐 잡음: 1931년에 이르러 우리의 문화 생활이 모두 양력으로 표준하므로 이에 맞춰, 수학 전문가에게 양력(율리우스력) 환산을 의뢰한 바 10월 29일로 되었다. 그 해부터 이 날을 한글날로 정하고 기념식을 가졌다.
그레고리오력으로 고쳐 정함: 1934년에 이르러 음-양력 환산 방법에 의문이 생김에 따라, 관련 전문가와 전문 기관에 위촉하여 의견을 모은 바 '세종 28년 음력 9월 29일'은, '서기 1446년 10월 28일'로 일치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에서 쓰는 양력(서력 1582년에 개정된 그레고리오력)으로 환산한 이 날로 '한글날'을 고쳐서 기념하게 되었다.
《훈민정음》원본의 발견: 1940년 7월에《훈민정음》원본이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끝에 "정통 11년 9월 상한(正統十一年九月上澣)"이란 글이 있어서, 한글 반포의 날이 대강 밝혀졌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져서, 모든 것이 통제되고, 집회를 엄금하는 때이라, 한글날 기념도 하지 못하였다.
10월 9일로 확정된 한글날: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한글 학회는 새 살림을 차리고, 한글 반포 날인 '정통 11년 9월 상한'을, 상순의 끝 날(상한)인 9월 10일로 잡고, 양력으로 환산한 결과, '서기 1446년 10월 9일'이 되므로, 이 날을 한글날로 확정하였다.
공휴일로 된 한글날: 1946년 한글 반포 500돌을 맞이하여, 정부에서는 뜻깊은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하였다. 이를 기념하여 내외 귀빈과 각계 유지 2만여 명이 덕수궁에 모이어, 기념식을 가졌다.
기념식이 정부 주관으로: 이제까지 한글 학회와 세종 대왕 기념 사업회가 주관해 오던 기념식을 1981년, 535돌 한글날부터는 서울시가 주관하였고, 그 다음 해(1982)부터는 문화공보부(지금은 문화관광부) 주관으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휴일에서 제외된 한글날: 그런데, 1990년 총무처(지금은 행정자치부)에서 법정 공휴일 축소 문제와 관련하여, 한글날도 공휴일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1990년 8월 24일 국무회의에서 한글날을 (국군의 날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시키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의결, 통과시켰다. 이후부터 '한글날'은 단순한 기념일로 축소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경일로 제정, 그 위상을 높여야 할 한글날: 그 동안 끌어내려졌던 한글날을 추켜 올려 국경일로 제정하여 온 나라의 잔칫날, 온 누리의 잔칫날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한글 학회를 비롯하여 관련 단체들에서는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기 위해 1999년 7월 9일에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공청회를 여는 등 지금까지 갖가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출처:네이버 지식인>



<세종대왕>님에 대해서도 알아볼까요!? 



조선 제4대 왕(재위 1418~1450). 젊은 학자들을 등용하여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으며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의 과학 기구를 제작하게 했다.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고 쓰시마섬을 정벌하는 등 정치·경제·문화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았다.
재위 1418년~1450년
왕비 소헌왕후()
아버지 태종()
어머니 원경왕후()

  이름 도(祹). 자 원정(). 시호 장헌(). 태종의 셋째 아들로 원경왕후() 민씨() 소생. 비()는 청천부원군() 심온()의 딸 소헌왕후(). 1408년(태종 8) 충녕군()에 봉군, 1413년(태종 13)에 대군이 되고 1418년에 왕세자에 책봉, 동년 8월에 22세의 나이로 태종의 왕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즉위 뒤 정치·경제·문화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아 수준 높은 민족문화의 창달과 조선 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하였다.

 

그는 정치적으로 중앙집권 체제를 운영하기 위하여 1420년에 집현전(殿)을 설치하고 황희(맹사성()·허조() 등의 청백리()를 등용하여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위하여 노력하면서 의정부()를 견제했다. 또한 이를 왕립 학술기관으로 확장하여 변계량(신숙주(정인지(성삼문()·최항() 등의 젊은 학자를 등용하여 정치 자문·왕실 교육·서적 편찬 등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다. 1443년(세종 25) 한글을 창제하고, 1446년 이를 반포하였다. 또한 이천(蕆 )에게 명하여 경인자(갑인자(병진자() 등을 제작하게 하였는데, 이 가운데 갑인자는 정교하기로 이름난 활자이다.

초기에는 억불책()을 써서 5교() 양종(:천태종·조계종)을 선종()과 교종()의 2종으로 통합하여 각 18개 사찰만 인정하고 경행()을 금지했다. 하지만 말년에는 궁중에 내불당()을 짓고 승과제도(), 경행을 인정하는 등 왕실 불교로 장려하여 불교 발달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여 1425년 관습도감()을 설치하고 박연()으로 하여금 아악()을 정리하게 하여 음악을 장려하였다. 악기도감을 설치하여 많은 아악기들이 제조되었으며, 편경과 편종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실록() 보관을 위하여 춘추관()·충주()·전주()·성주()에 4대 사고()를 설치했는데,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만 남고 모두 불타버렸다.

과학기술 업적은 1442년 이천·장영실()로 하여금 우량() 분포 측정기인 측우기()를 제작하게 했는데, 이는 1639년 이탈리아의 B.가스텔리가 발명한 측우기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그리고 궁중에 과학관인 흠경각()을 설치하고 과학기구를 비치하게 했고, 혼천의(해시계·물시계 등의 과학기구를 발명하였다. 김담(이순지() 등을 시켜 중국 원()나라의 수시력(), 명()나라의 대통력()을 참작하고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빌어 역서() 《칠정산내외편()》을 편찬했다. 또한 천문·역법()·의상() 등에 관한 지식을 종합한 《제가역상집()》을 이순지가 펴냈다.

경제·사회 정책면은 1436년 공법상정소()를 설치하고 각도()의 토지를 비척()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어 세율()을 달리하는 안을 실시했다. 그러나 결함이 많아 1443년에 공법상정소의 안을 시정하기 위하여 전제상정소()를 설치하고 풍흉()에 따라 연분 9등법()과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전분 6등법()에 의한 수등이척법()으로 조세의 공평화를 도모했으며, 전국의 토지를 20년마다 측량하여 양안()을 작성하게 했다.

그리고 의창(의료제도·금부삼복법()을 제정했고, 노비()에 대한 지위 등을 개선, 사형()을 금하도록 했다. 대외정책면에서는 국가의 주권 확립과 영토확장에 진력한 치적을 들 수 있다. 명나라와의 관계를 보면, 처녀진헌()을 폐지하는 한편, 명나라에 보내던 금()·은()의 조공물()을 폐지하고 마()·포()로 대신하도록 했다. 그리고 여진()과의 관계는 무력으로 강경책을 쓰거나 회유하는 화전() 양면책을 썼는데, 두만강 유역의 여진은 김종서()로 하여금 구축하도록 하고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였다(1432). 압록강 유역의 여진은 최윤덕()·이천 등으로 하여금 구축하게 하고, 4군()을 설치하였다. 이때의 국경선이 압록강으로부터 두만강까지 확보되어 이곳에 사민정책()을 실시하는 등 국토의 균형된 발전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일본과는 1419년(세종 1) 이종무()로 하여금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섬[]을 정벌하게 했으며, 이후 쓰시마 도주() 소 사다모리[]가 사죄하고 통상을 간청해오자, 1426년 삼포()를 개항하였다. 이후 왜인의 출입이 증가하자 1443년 왜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신숙주의 교섭으로 변효문()과 소 사다모리 사이에 계해조약()을 체결하게 하여 1년 동안에 입항할 수 있는 세견선()을 50척으로 제한했고, 세사미()를 200섬으로 제한하는 한편, 반드시 수도서인()에 한하여 왕래하도록 무역과 출입을 통제하였다. 능은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西) 왕대리()에 있는 영릉()인데 처음에는 광주()에 있었으나, 1469년(예종 1)에 이곳으로 옮겼다.

 <출처:두산 백과사전>



최근 KBS2에서 방영중인 '대왕 세종'

대중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원한다. 긍정적 인물, 승리의 역사에 대한 재조명은 그들에게 삶에 대한 무한한 자긍심을 제공할 것이다.

각종 음모와 모략, 혹은 비빈들의 사랑 싸움을 앞세운 권력형 암투가 그간 ‘궁중사극’이라는 옷을 입고 역사 드라마의 주류를 이뤄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그 서사가 가지는 드라마틱한 구조 때문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반대편에 있는 세종이나 혹은 KBS 대하드라마에서 이미 다룬 바 있는 이순신같은 인물들은 드라마의 금기로 취급되어 왔다. 항상 바른 길을 고집했던 무결점의 도덕군자들 속에서 어떤 드라마적인 재미를 끌어낼 수 있냐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던 듯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편견을 단호히 거부한다.

태평성세를 구가하여 안돈한 왕조를 이끌었던 인물이라 평가받고 있는 이가 세종이다. 우리는 이 이면에 훨씬 더 많은 드라마가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태평성세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이는 없다. 그러므로 이 태평성세를 이루기 위해 세종은 치열한 투쟁을 했을 것이고 이 시간들 속에 그가 수많은 눈물과 한숨을 묻어 두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백조는 아름다운 자태로 물위에 떠있지만 그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 물밑에서는 쉼 없이 갈퀴로 물살을 젓고 있다. 우리는 그 눈물겨운 몸부림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단지 권력을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든 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조선, 자존감 넘치는 강성한 조선의 건설이라는 아름다운 대의를 위해 쉼 없이 갈퀴질을 멈추지 않았던 세종과 그의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긍정적 가치를 향한 투쟁에 주목하여 국민들에게 민족사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고, 나아가 이를 통해 자아 정체성을 확인하고 보다 긍정적인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촉매제가 되고자 한다.

<KBS 극 기획자가 의도하는 내용 이라고 합니다>


또 얼마전에 개봉했던 영화 '신기전' 세종대왕 역으로 안성기씨가 연기를 했죠.
문법,과학,천문,무기 기타등등...
진짜 여러 분야에 모두 관심이 많았던 세종대왕~

왠지 요즘들어 세종대왕이 더 많이 나오는건...
이렇게 힘든시기....나라를 바로 이끌어줄 지도자가 절실한 마음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작고 약해보이지만 속은 강한!
그런 대한민국이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한글날 기념 유명한 각 포털사이트의 메인배너들~
다음 네이버 구글 야후~
구글은 글로벌 포털사이트 답게 반은 영어 반은 한글 이군요..
경쟁이라도 하듯이 다 똑같은 -_-
평소에도 이렇게 하면 안되려나요? 꼭 한글날 기념이라고 이렇게 배너를 바꾸네요.
10월한달동안 이라도 유지해줬으면 좋겠어요^^


요건 보너스로 인사동에 있는 한글간판의 스타벅스 커피전문점.
서양문화의 상징이라고도 볼수있는 스타벅스. 결국은 우리 전통의 멋을 지키는 인사동에 까지 입점을 했는데요.
간판은 한글이라는거...독특하죠? (전세계에서 하나뿐인 스타벅스 한글간판 이라더군요.)
오늘 같은 날은 우리 전통을 더 눈여겨보고자 인사동에 한번 들러보시는것도 좋을것 같네요.

<출처:본인~>


대한민국 국민포털(?) 네이버에 이런 서비스가 생겼네요.
맞춤법 교정~검색!!


 







검색시에 잘못 알고 있는 한글 단어들을 올바른 단어로 알려주는 이런 친절한 서비스를~
점유율 60%가까이되는 국민 포털 답군요 -- 잘 활용해야 겠습니다.
흔히들 잘못알고 있는 단어들이 참 많네요.

어쩌다 보니 네이버 광고가 됐지만..전 다음이나 야후도 즐겨 써요~
티스토리는 다음에서 후원하던가.. 덜덜덜..


여하튼 다들 한글날 잊지 말고..
휴일도 아니어서 그냥 지나쳐 버리면 안됩니다.

우리는 한글날이 그나마 어떤날인지 알지만...
어린이들은 단순한 기념일일 뿐일겁니다.

한글날의 정신을 아이들에게 잘 전달해주어야 하는게 어른들의 사명이 아닐까 합니다.

어서 다시 국경일로 지정이 됐으면 좋겠네요.
(주 5일제의 압박으로 힘들것 같긴 하지만요^^)